
제목이 저를 사로잡은 책입니다. 개인적인 슬픔을 강하게 느낀 뒤였기 때문에, 그런 제 슬픔을 공부해 보고 싶었는데, 그것을 공부하는 슬픔이라고 하니까,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독서를 잘하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책은 도끼다에서 말하는 "교훈"이 그대로 적용되었던 독서는 바로 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책은 도끼다 리뷰 링크)
감상평
이 책은 특정한 하나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구조가 아닙니다. 여러 문학 작품과 사회적 사건을 오가며 슬픔이라는 감정이 개인과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는 책입니다.
우선 저에게는 '슬픔' 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그 슬픔이 있습니다. 특히 상실과 아픔과 고통을 겪어본 사람에게는 더 크게 와닿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으로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동안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조용한 압박감”이었습니다. 읽는 동안 울컥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한참 동안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려웠습니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감정이라 할지라도 감정을 쉽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슬픔을 비교적 단순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상실이 있으면 슬프고,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고, 결국은 의미가 남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믿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슬픔은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어떤 상실은 성장의 계기가 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람들과 소통할때 공감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는데, 실제로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해했다고 말하고, 위로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해석까지 하려고 하는데요. 이 책을 읽으며 그 태도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처음으로 명확하게 느꼈습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윤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슬픔을 겪었을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슬픔을 어떤 태도로 반응해 주었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다양했습니다. 같이 공감해 주며 화를 내거나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의 얘기를 그냥 들어만 주거나, 당시의 제가 "안 괜찮아도 괜찮아"라고 얘기해 주거나, 오히려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거나.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어려워했던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그게 저에게는 이제 와서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더 감사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읽는 내내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뉴스처럼 소비한 적은 없었는지, 타인의 상실을 나의 감정 자극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집단적 비극 앞에서 잠시 분노하고 잠시 애도한 뒤 곧 일상으로 복귀했던 순간들도 떠올랐습니다. 그 복귀의 속도가 혹시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닌지, 나는 충분히 머물렀던 적이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공감하지도 않으면서 이해한다 하고 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고, 할 말이 없어 옆에서 가만히 들어만 줬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타인의 슬픔을 말할 때 잠시 멈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위로의 말을 건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이 말을 해도 되는지, 이 말이 나를 위한 말은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그 작은 멈춤이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습니다.
"삶의 그런 균열들 사이로 음악이 흐를때, 변함없는 음악은 변함 많은 인생을 더욱 아프게 한다." 삶의 균열들 사이로 음악이 흐르는데, 나의 삶은 이렇게 변했는데, 변함이 없는 과거의 나를 상기시키는 음악이 들려올 때면 변하기 전의 내 모습, 슬픔을 겪기 전의 나를 떠올리게 되어서 더욱 아프게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제가 행복했던 시절 들었던 노래가 불행한 시절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적이 있는데요. 그때 정말 멈출 수 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구절은 와닿는 것을 넘어 제가 느낀 감정 그 자체였습니다.
기본 정보
저자: 신형철
출간: 2018년
장르: 문학평론 에세이
출판사: 한겨레출판
구성: 문학 작품과 사회적 사건을 매개로 한 평론 및 산문
핵심 주제
이 책의 중심에는 하나의 명제가 있습니다. 슬픔은 견뎌야 할 감정이며, 쉽게 극복의 서사로 만들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빠르게 의미화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슬픔을 성장의 계기로 만들고, 비극을 교훈으로 환원하려 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 태도를 경계합니다. 어떤 슬픔은 해결되지 않으며, 그 미해결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 책은 공감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함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 태도를 제안합니다. 슬픔을 공부한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겸손하게 대하는 훈련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가장 큰 주제는 “타인의 슬픔은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전제를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태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소개문에서도 저자가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한 노력”을 담았다고 밝힙니다. 이 책은 공감의 낙관을 말하지 않습니다. 공감의 한계를 먼저 세우고 그 한계 바깥에서 윤리를 세우려 합니다. 그래서 슬픔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두 번째 주제는 문학과 현실 사이의 “가교”입니다. 단지 작품을 잘 읽는 방법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현실을 더 정교하게 바라보는 법을 다룹니다. 예스 24 소개에서도 “작품과 세상 사이에 가교”라는 표현이 핵심으로 제시됩니다. 즉 이 책에서 슬픔은 문학 내부의 정서가 아니라 사회 속 사건과 타인의 고통을 대면하는 방식으로 연결됩니다.
세 번째 주제는 슬픔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입니다. 1부에서는 헤로도토스에서 헤밍웨이를 지나 한국 시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의 슬픔과 상실 등을 다룹니다. 여기서 슬픔은 하나의 정답 감정이 아닙니다. 허무, 덧없음, 상실 같은 감정들이 서로 다른 결로 얽혀 있고 문학은 그 결을 구분해 주는 도구가 됩니다. 결국 이 책은 “슬픔의 어휘를 확장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네 번째 주제는 매체 감각의 확장입니다. KPIPA 소개문은 이 책이 시와 소설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 노래, 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정확히” 읽고 듣고 보려는 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슬픔은 특정 장르의 감정이 아니라 삶의 감각이므로 매체를 건너가며 읽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이 때문에 책은 평론집 같기도 하고 산문집 같기도 한 형태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