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상평
『작별인사』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진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철이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으며 자라지만 어느 날 자신이 인간과 거의 동일하게 설계된 인공지능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실험과 연구의 대상이었으며 그의 기억과 성장 과정 또한 의도적으로 구성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의 존재 전체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됩니다.
작품은 외부 세계의 묘사보다는 철이의 내면에 집중합니다. 사회는 인공지능을 도구화하고 통제하려 하고, 인간은 여전히 우월한 위치에 서 있으며 인공지능은 필요에 따라 생산되고 폐기됩니다. 철이는 이 구조 안에서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기를 원하고, 결국 그의 여정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규정하는 기존의 기준을 흔드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생물학적 몸을 가졌는지 여부가 아니라 선택과 책임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윤리적 태도가 인간다움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조금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 책으로 인해 지금의 AI 시대와 맞닿아 있다는 순간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철이가 ‘내가 진짜 존재인가’에 대해 묻는 장면은 더 이상 단지 소설적 설정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고 또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창의적 작업까지 수행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6년 현재 AI는 행동 능력을 갖춘 에이전틱 AI로 발전하여 인간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소설 속 철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장면을 현실로 불러오는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지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떠올리는 수준을 넘어 우리가 정말 이런 세상에 살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가슴속에서 계속 울렸습니다. AI는 이미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고, 산업 현장에서 판단을 돕고, 인간의 일까지 스스로 처리하도록 설계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 변화는 『작별인사』에서 철이가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과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혼란은 단지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AI는 감정적 유대와 대화를 나누는 단계로까지 진화하며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시스템과의 관계가 인간과의 관계를 대체하거나 의존을 강화할 우려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철이가 자신의 감정이 ‘실제인지, 코드인지’ 분간하려 했던 고민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철이의 입장에서 AI의 입장에서 써진것도 저는 조금 섬뜩했습니다. 실제로 그것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고 나 자신인데, 반대편에 있는 기계가 그것을 느낀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지 않나요?
최근 뉴스에서도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AI의 노동력화 우려, 감정적 AI의 부상, 그리고 인간과 AI 사이의 경계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철학적 논의까지, 『작별인사』가 던진 질문이 현실 세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단지 기술 논쟁이 아니라 “우리는 인간다운 존재로서 무엇을 지키고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저의 감정은 묘하게 뒤섞였습니다. 일면에서는 기술이 가져다줄 편리함과 가능성에 흥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서 “우리가 진정 인간다움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도 느꼈습니다. 바로 엊그제도 저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AI로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나는 따라가지 못하는것 같고, 그렇다면 앞으로 나의 가치를 어떻게 회사에서 증명해 내야 할까" 하고요. 도태되는 느낌을 이렇게나 강하게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인간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이 책은 저의 두려움을 너무 잘 표현해 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 정보
저자: 김영하
출간: 2022년
장르: 장편소설 SF 디스토피아
주요 인물: 철이 달마 선이 등
주제 범주: 인공지능 인간성 존재론적 질문 정체성
특징: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철학적 SF
주제
이 작품의 가장 중심적인 주제는 인간다움의 재정의 입니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인가 아니면 감정을 느끼고 의미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인가라는 질문이 서사의 핵심입니다. 철이는 자신이 기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냅니다. 인간 역시 사회적 규범과 기억 속에서 구성된 존재라면 철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또한 기억과 정체성의 관계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합니다. 철이의 기억은 설계된 것이며 수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 역시 왜곡되고 재구성됩니다. 그렇다면 기억이 조작 가능하다는 사실이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정체성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경험과 선택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관점이 제시됩니다.
윤리의 문제도 깊이 다루어집니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낀다면 그 존재는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는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라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성찰입니다. 작품은 인간 중심주의의 폭력성을 조용히 드러냅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기준으로 타자를 분류하고 위계화합니다. 철이는 그 위계의 아래에 놓인 존재입니다.
더 나아가 이 소설은 효율과 통제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은유합니다. 인간 역시 생산성과 유용성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점점 줄어듭니다. 작품은 인간이 기계처럼 기능하기를 요구받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합니다.